[월간중앙 2007년 10월] 노무현·김정일·푸틴 2007 노벨평화상 노린다
[이슈추적]
고르바초프·옐친 前 러시아대통령 극동지역 자문위원 아나톨리 리 충격 증언
푸틴 주도로 3인 공동 수상 추진 N-프로젝트의 정체
남북정상회담에 ‘푸틴 大이벤트’ 터질까?
(월간중앙 2007년 10월호)
■ 푸틴의 3선 도전 야심… 7년 전 사할린에서 ‘N-프로젝트’ 첫 논의
■ 극비 논의에 남·북·러 핵심 인사 참여… 2차 남북정상회담 이끌었다
■ 서울 주재 러시아 부대사 거쳐 현재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인 발레리 수히닌이 핵심
■
■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핫산 출발한 곡물화차 평양에 들어올지 관심사
연말 대선을 코앞에 두고 벌어지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주인공이
지난 9월8일부터 이틀간 호주 시드니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이번 정상회의를 위해
노 대통령의 발길은 바쁘게 이어졌다.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65) 국가주석을 시작으로 미국의 조지 부시(61) 대통령,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55) 대통령 등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53) 총리를 제외한 ‘북핵 6자회담’ 참가국 정상들과 차례로 양자회담을 가졌던 것.
당시 정상회담의 최대 화두는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제2차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한반도 평화 문제였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종전 선언을 전제로 하는 ‘한반도 평화협정’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갔다.
그 과정에서 해프닝도 발생했다.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이 종전 선언과 한반도 평화협정 문제를 부시 대통령의 입으로 확인해줄 것을 재차 요구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부시 대통령은 언짢은 표정을 지었고, 이로 인해 노 대통령은 미국 언론 등으로부터 “외교 관례에 맞지 않는 불편한 대화를 야기했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 청와대와 백악관은 “통역이 매끄럽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고 언론의 보도 내용을 일축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가운데 최근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대선용 빅 카드를 들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이들은 한결같이 “APEC 정상회의에서
회담에서 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이 북핵문제 해결은 물론 남·북한 및 러시아 간 경제협력과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 역시 이에 동의를 표하면서 “러시아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적극 지지하며 성공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양국 정상은 또 극동시베리아 개발과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 APEC’ 개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개최 준비를 위한 인프라 건설 등에서도 양국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언뜻 회담 내용은 일반론적인 합의 외에 별다른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달랐다. ‘극동 시베리아 개발’에 대한 협력 부분을 특히 주목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요즘 들어 극동시베리아 개발 내용 등과 관련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동북아시대위원회(동북아경제중심추진 대통령 자문기관)·국가정보원 등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이 외에 남북정상회담의 대형 이벤트에도 극동러시아와 관련한 내용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국 기업들이 극동시베리아 개발사업에 수억 달러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으며, 특히 에너지 분야에서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안다. 그 중에서 러시아 에너지 자원을 한국시장에 공급하는 프로젝트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최근 러시아 정부가 확정한 ‘극동·자바이칼 개발계획’ 역시 한국을 비롯한 중국·일본·미국 등의 투자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극동지역 개발에 열 올리는 러시아
이 계획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극동지역에 2013년까지 약 210억 달러(약 19조7,400억 원)를 투입해 바이칼호 동쪽에서부터 베링해까지의 지역을 개발하는 것으로 확정했다. 프리모르스키주(연해주)·하바로프스크주·사할린 등 한국과 심리적·지리적으로 가까운 세 지역에 총 투자액의 절반 정도를 투입할 계획인 것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그런데 왜 굳이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런 이야기들이 오가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서는 상당히 복잡한 이야기가 얽혀 있다.
<월간중앙>은 지난 8월 말 이 같은 내용을 소상하게 알고 있다는 한 인사를 만났다. 그는 자신을 한국 출신으로 고르바초프와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의 극동지역 자문위원을 지낸 ‘아나톨리 리’라고 소개했다. 그는 러시아에서 극동시베리아 농업개발 방향을 주제로 쓴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했다. 대북 전문가들은 그를 두고 ‘현장경험이 풍부한 한반도 문제 전문가’라고 불렀다.
우선 그의 충격적 발언을 옮겨 보자.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제반 극동시베리아 개발사업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 위해 벌이는 프로젝트 때문이다. 이름하여 ‘N-프로젝트’다. 여기서의 ‘N’이라는 이니셜 역시 노벨평화상을 의미한다.”
사실 이와 관련한 언론 보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월부터 일부 주·월간지를 중심으로 ‘푸틴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인공’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번 증언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나톨리 리 자신이 N-프로젝트에 깊숙이 개입해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그와의 대화는 처음부터 깊숙이 들어가는 듯했다.
― N-프로젝트는 정확히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가?
“
― 그날 논의한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푸틴의 장기집권 전략이었다. 당시 푸틴은 재선을 노리고 있었는데 재선은 확실한 상황이어서 별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러시아연방 헌법상 3연임은 금지돼 있다. 때문에 푸틴 대통령의 2차 임기 말에 러시아 국민의 지지율을 8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노벨평화상 같은 국제적 공적을 이룬다면 헌법 개정도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나왔다. 이후 본격적으로 푸틴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작전에 돌입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러시아 국민의 지지도는 우선 확보된 상황으로 봐도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실제로 러시아의 여론조사 기관인 ‘레바다’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의 지지도는 지난 8월 기준 84%를 기록하고 있다.
푸틴 지지도 84%로 치솟아…
같은 여론조사 기관이 조사한 푸틴의 지지도 추이를 보면 2004년 12월의 69%를 시작으로, 1년 뒤에는 73%, 2년 뒤에는 78%를 보일 만큼 꾸준히 상승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푸틴이 수영·사냥 등으로 단련된 근육질 노익장을 과시하는 것도 인기 유지에 한몫 한다는 평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대통령제 국가에서 보이는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만큼 러시아 국민의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탓에 최근 러시아에서는 ‘헌법을 개정해서라도 푸틴 대통령을 3연임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으로 전한다. 아나톨리 리의 의견도 이처럼 러시아 국내 환경이 조성된 만큼 노벨평화상 수상 같은 번듯한 이유 하나만 만들어주면 헌법 개정은 “거저 먹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물론 푸틴 대통령은 공식적으로는 줄곧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차기가 아닌 차차기 대선을 노리면 상관없다는 해석이 바로 그것. 러시아연방 헌법 전문 어디에도 ‘3연임이 아닌 3선을 금지한다’는 조항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러시아 일간지 <코메르산트>에 따르면 지난 6월 독일의 하일리겐담에서 열린 ‘선진 8개국(G8)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 출마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헌법상 금지하지 않아 가능하지만 아직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긴 바 있다.
이에 대해 한 러시아 전공 정치학자는 “만약 그가 차차기 대선을 노린다고 봤을 때, 그 공백기를 메울 수 있는 호재로 노벨평화상 수상 만한 것이 없다는 측면에서 N-프로젝트는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처럼 노벨평화상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의문은 남는다. 왜 남북정상회담이 푸틴의 노벨상 수상과 연결되느냐는 점 말이다. 이어지는 아나톨리 리와의 일문일답.
― 푸틴의 노벨평화상 수상과 남북정상회담이 도대체 어떻게 연결된다는 말인가?
“사할린에서의 모임이 있은 뒤 러시아 측에서 노벨평화상사무국에 자문을 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자문 결과 푸틴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크게 두 가지로 제시됐다. 우선 체첸 반군 등에 대한 무력 행사를 중지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다. 다음이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한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한반도종단철도(TKR)와 연결하고 북한의 핵무기를 불능화하는 일도 포함돼 있다.
또 한반도의 통일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북한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러시아가 제공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그래서 이때부터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물밑작전을 펼친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남·북·러 3자 정상회담(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일) 개최가 1차 목표였다. 솔직히 푸틴 대통령 혼자 노벨상을 수상하는 것은 어색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남·북한과 러시아 수반의 공동 수상을 노리고 덤벼든 것이다.”
DJ도 언급한 3자 정상회담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다. 지난 2월5일
김 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대통령 재직 시절 러시아 정부의 제안으로 (러시아의 바이칼호 남쪽에 위치한) 이르쿠츠크에서 남·북한과 러시아가 함께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추진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또 “참여정부 초기에도 남북정상회담이 거의 성사 단계까지 갔다 무산된 바 있다”고도 말했다.
물론 청와대는 참여정부 초기의 정상회담설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의 입에서 직접 나온 이야기라는 점에서 N-프로젝트 내용의 개연성을 확인할 수 있다.
노벨평화상사무국이 푸틴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과제 중 일부는 이미 진행되고 있거나 상당한 진전을 보이는 분야도 있다. 체첸 반군이 그렇다. 러시아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 하에 지속적으로 이들에게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처럼 전면전 양상은 줄어든 모습이다. 또 북핵 불능화 문제 역시 ‘북핵 6자회담’ ‘북·미 양자 접촉’ 등을 통해 빠른 속도로 해결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 연장 선상에서 한반도 평화협정 이야기도 물이 오르는 요즘이다.
물론 APEC 정상회의에서 다소 해프닝이 벌어진 것은 사실이나 큰 틀에서 봤을 때 이러한 분위기는 분명 조성되고 있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이 그런 기운을 이을 디딤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도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회자하고 있다.
문제는 러시아의 역할이다. 북핵 불능화의 경우 러시아가 6자회담 참여국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점쳐지지만, 한반도 평화협정의 경우 옛 소련이 정전협정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인 권한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러시아가 이 문제에서 완전히 ‘논외’라고도 볼 수 없다. 평화협정 체결로 가는 분위기 메이커 노릇은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나톨리 리는 그런 차원에서 남·북·러 3자 정상회담이 추진된 것이라고 밝혔다.
“극동지역 전권대사 대리참석 가능성 있어…”
하지만 오는 10월 초의 남북정상회담 일정 어디에도 ‘러시아’는 보이지 않는다. 또 주무대 역시 러시아 극동지방이 아닌 평양으로 결정났다. 왜 그런 것일까?
“
― 푸틴이 직접 평양을 방문한다는 말인가?
“현재로서는 푸틴 대통령이 직접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그가 오지 않는다면 카밀 이사하코프 극동지역 전권대사가 대통령 대리로 올 것이다. 그리고 엄청난 이벤트를 펼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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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산을 주목하라. 그곳에 집결된 러시아 곡물과 원자재가 두만강 국경을 넘어 나진·선봉과 평양을 거쳐 서울로 향할 것이다. 어쩌면 부산까지 내려갈지도 모른다. 상상해 보라. 이것이 이루어진다면 대륙으로 가는 육로가 완전히 뚫리는 것이다. 이보다 더 충격적인 이벤트가 어디 있겠나? 어차피 북핵 문제나 평화협정 자체는 남·북한의 범위를 벗어난 문제이기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에서 직접 언급은 피하려는 눈치다.”
아나톨리 리의 설명에 따르면 이렇게 해야 푸틴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위해 노벨평화상 사무국이 자문한 조건이 완전히 충족될 수 있다고 한다. TSR와 TKR의 연결은 물론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교두보로서 주변 국가들이 꼼짝 못하게 만들 대형 이벤트라는 것이다. 또 한국의 대선 판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집결지가 핫산인 이유는 이곳에서부터 철로가 바뀌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북한의 철로는 표준궤다. 그런데 러시아의 경우 이보다 폭이 넓은 광궤를 쓴다. 이 두 궤를 연결하는 곳이 러시아 극동지방의 핫산이다. 핫산은 철로만 건너면 북한의 두만강역이 나올 정도로 북한에서 가까운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곡물과 원자재일까? 아나톨리 리는 “곡물은 평양에 모두 내리고, 목재와 같은 원자재는 남한으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북한 경제 및 사회를 활성화할 수 있는 기반으로서 식량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2003년 9월 한국이 러시아로부터 회수해야 할 차관 상환금 22억4,000만 달러(이자 포함) 중 6억6,000만 달러를 삭감해 준 적이 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연쇄 차관 문제 풀 중요한 열쇠
여기에는 북한도 개입돼 있다는 것이 아나톨리 리의 지적이다.
“잘 알다시피 연해주를 비롯한 러시아 극동지방은 연방 내에서도 대표적으로 인구가 적은 지역이다. 때문에 이곳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인력을 다른 지역에서 데리고 와야만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북한은 이 지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결국 북한의 인력을 이용해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북한 정부의 협조가 필수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정황도 있다. 지난 2월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인 발레리 수히닌(57)은 한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와 북한 간 부채 문제 해결은 신용 대부를 포함한 많은 분야에서 폭넓게 경제 상호관계 전망을 열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꼭 현금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빌린 차관을 갚을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북한 역시 러시아 차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를 택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북한은
이와 관련해 아나톨리 리는 “최근에도 이와 관련한 실질적인 움직임이 있었고, 여권의 핵심 인사들이 이를 타결하기 위해 러시아를 자주 드나들었다”고 말했다. 일종의 ‘빅딜설’인데 차관 문제 해결과 관련해서는 그 동안 국내 정치권에서도 여러 가지 논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현물 지급 방식이다. 최근에도 심심찮게 거론되는 러시아산 헬기 등 방위산업 물자를 차관 대신 받는다는 계획이다.
이외에 미수에 그친 프로젝트도 있다. 아나톨리 리는 “‘전대월 오일게이트’가 사실은 차관 대신 사할린의 광구를 넘겨받기 위해 움직이다 사고가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이 사건에는
北에서 곡물 직접 요구해…
하지만 오랜 논의의 결과 실현 가능한 프로젝트는 농업개발협력지구를 만드는 것이라는 게 아나톨리 리의 주장이다. 그는 또 “남·북·러 3국의 차관 문제 해결이 남북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를 만드는 가장 큰 배경”이라고도 언급했다.
아나톨리 리는 이런 프로젝트가 가능한 구체적 자료 몇 가지를 제시했다. <월간중앙>이 단독 입수한 이들 자료의 내용은 두 가지다. 하나는 러시아 정부가 핫산에서 북한으로 출발하는 러시아산 곡물 거래를 허가하는 내용의 서류다. 이 서류에는 금융거래까지 허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서류가 작성된 시기는 DJ 정권 말기인 2002년 4월과 5월에 걸쳐 있었다. 그렇다면 금융거래는 어떤 루트를 통해 이뤄진 것일까?
아나톨리 리는 “연해주의 주도(主都)인 블라디보스토크에 위치한 알파은행이 핸들링 뱅크(중계은행)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 은행을 통해 곡물 거래와 관련한 자금이 오갔다는 것이다. 그는 또 “그렇기 때문에 일반에는 노출이 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또 하나의 서류는
이 서류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인수는 연해주 핫산이나 북조선 라진(나진)에서 하며 기차곡간은 인수 후 한 달 이내에 반드시 돌려드리겠습니다.”
이 내용은 한국의 자본으로 생산한 곡물이 러시아 극동지방에서 자유롭게 북한의 국경선을 넘나들고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아나톨리 리가 주장하는 남북정상회담 대형 이벤트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면서도 개연성이 충분함을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곡물 외에 또 하나의 러시아산 선물 보따리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 나돌고 있다. 이에 대해 아나톨리 리는 “당연히 에너지, 그 중에서도 석유와 가스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익히 알려진 대로 ‘에너지 부국(富國)’이다. 그래서 많은 대북 전문가는 현재 심각한 에너지난을 겪는 북한으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없을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북한에는 정유 시설이 단 두 군데 있다. 신의주 인근의 평안북도 피현에 위치한 봉화화학공장(연간 처리 능력 150만t)과 함경북도 나진·선봉시에 있는 승리화학공장(연간 처리 능력 200만t)이 바로 그것.
전자는 중국이 지원하는 시설로 지금도 가동 중이다. 하지만 옛 소련의 지원을 받던 승리화학공장은 옛 소련 붕괴 이후 가동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나톨리 리는 잘못된 정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원유 공급 파이프의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1년에 두 차례(4월과 9월) 가동한다. 내가 직접 현지에서 확인한 사안이다.”
이어 그는 “이 정유 시설을 본격적으로 재가동하는 이벤트를 기대해도 좋다”고 덧붙였다. 물론 재가동에 드는 비용 문제는 러시아 정부가 ‘북핵 문제의 점진적 해결에 따른 주변 국가들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단서를 달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석유가 아닌 가스의 경우에는 한국도 혜택을 보는 방향으로 전개될 공산이 크다고 한다. 러시아 극동지역의 가스 파이프라인을 한국까지 연결하면 러시아로서는 엄청난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서도 수송비가 절감되고, 안정적 공급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아나톨리 리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할지도 모르는 작지만 재미있는 이벤트도 있다고 했다. 가령 중국에 있는 ‘북한식당’처럼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북한식당을 운영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제주도에 식당을 연 뒤 훈련된 북한 여성을 직원으로 데려오는 구체적 방안까지 생각해 두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공식적인 석상에서 논의되기보다 우연한 제안 형식으로
“
도대체 이러한 엄청난 프로젝트를 주도한 사람은 누구일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그 인물이 발레리 수히닌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일 것이라는 보고가 많다.
‘N-프로젝트’ 핵심 인물은 발레리 수히닌
수히닌 대사는 러시아의 대표적 한반도 전문가로 평양으로 부임하기 전에는 주한 러시아대사관에서 부대사로 재직했다. 또 그는 남·북한 정상과 푸틴 대통령이 회담할 때 통역을 전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수히닌이 한반도 문제에서는 푸틴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아나톨리 리는 “지난 3월
그의 설명에 따르면 수히닌이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N-프로젝트 역시 그의 손에서 조율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수히닌의 움직임은 매번 주목 대상이다. 푸틴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속내가 그의 말과 동선을 통해 읽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공교롭게도 남북정상회담이 끝나고 1주일여 뒤인 10월13일은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날이다. 이 날 정말로 아나톨리 리의 말대로 각각 서울·평양·모스크바의 관저에서 3국 정상들이 노벨평화상 위원회로부터 전화를 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대형 이벤트는 과연 연말 대선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을 것인가? 이제 그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러시아에 제공한 차관 어떻게 됐나?
“수교 대가로 14억7,000만 달러 차관 제공… 러시아, ‘현물상환 가능’ 단서 달아”
1990년 9월 한국은 북방정책의 핵심인 ‘한·소 수교’를 위해 옛 소련에 총 30억 달러의 경협차관을 공여하기로 약속했다. 이에 따라 1991년 14억7,000만 달러의 차관을 제공했다.
이 중 10억 달러는 은행 차관이었고, 4억7,000만 달러는 삼성전자·LG전자 등이 생산한 가전제품을 이용한 소비재 차관이었다. 하지만 그해 12월 옛 소련이 해체됨으로써 경협차관 제공은 중단됐다. 그리고 여기서 상환 받은 금액은 그 이자인 3억7,000만 달러뿐이었다.
그러다 2003년 9월 한·러 양국은 경협차관상환협정에 서명했다. 그 내용은 이자를 포함해 불어난 원리금 22억4,000만 달러 중 6억6,000만 달러를 한국 정부 측에서 삭감해 준다는 것이었다. 나머지 금액인 15억8,000만 달러에 대해서는 당시 경제부총리인
이후 2006년까지 한국은 러시아로부터 방위산업 물자와 KA32 헬리콥터 등의 현물로 2억5,000만 달러어치를 받았다. 잔금 13억3,000만 달러는 올해부터 2025년까지 원칙적으로 현금으로 받기로 돼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단서를 달았다. 경우에 따라 현금이 아닌 현물로 줄 수 있게 말이다.
일부 국내 보도에 따르면 지난 9월10일부터 이틀간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러 군사기술공동협력실무회의에서도 상환 방식을 현금과 현물을 50%씩 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또 이에 따른 현금상환 기간은 2025년에서 2010년대 초까지로 앞당긴다는 논의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에 대해
그런 가운데 국방부가 러시아제 상륙 기동 헬기를 도입하는 등의 ‘3차 불곰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된다.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 ‘발레리 수히닌’은 누구인가?
“푸틴 대통령 통역 전담… 러시아 최고의 한반도通”
발레리 수히닌(57)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는 블라디미르 푸틴(55) 러시아 대통령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최고의 한반도 전문가다. 수히닌은 ‘대통령 공식 통역사’라는 별도의 직함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 푸틴 대통령과
수히닌 대사는 1973년 북한 김일성대 조선어학과를 졸업한 뒤 이듬해부터 북한 주재 러시아대사관에 근무했으며, 1985년부터 평양에 파견돼 7년 동안 참사관으로 있었다. 1992~95년 아주제1과장을 역임한 뒤 1995~2000년 주한 러시아대사관에서 근무했다. 또 ‘북핵 6자회담’ 러시아 측 차석대표를 역임했으며, 지난해 8월 평양으로 부임하기 전에는 한국 주재 러시아 부대사로 활동했다.
2004년 한국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모스크바 외교가에서는 ‘그의 움직임을 읽으면 한반도와 관련한 푸틴 대통령의 동정을 알 수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런 그가 북한으로 옮긴 이유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다. 그 중 하나가 ‘N-프로젝트’ 때문이라는 설이었다.
2005년 3월 수히닌은 <주간한국>과 가진 인터뷰에서 “러시아에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은 충분하고, 러시아는 언제든 도와줄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또 수히닌은 북한 대사로 가는 배경에 대해서도 “미션(임무)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