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례사 이야기
나의 주례사 이야기
(재)국제농업개발원
연구소장 이병화
나의 첫 주례는 36년 전 내 나이 35세 되던 해, 신랑은 나보다 7살 아래인 내가 가르친 제자였고, 신랑의 모교인 정읍농림고등학교 강단에서였는데 당시 나는 신갈농민학교장과 문교부발령 ‘농업계 학생 지도 위원장’이라는 명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 날 식장에는 문교부 장관의 축사가 있었고, 3학년 재학생들이 모두 나와 축하해주었고, 특히 여학생들은 신부 들러리를 서주었다.
이후 지금까지 103쌍의 주례를 맡았는데 다행히 단 한 쌍도 헤어진 부부가 없다는 것은 내 자신도 매우 행복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옥에 티’라고 지적되는 것이 무슨 조화인지 103쌍 중 101쌍이 첫 아이는 딸을 낳았다는 것이다. 둘째와 셋째야 아들도 낳고 딸도 낳았지만…. 또 기특한 것은 103쌍 모두 출산을 하여 무자식 부부는 없다는 사실이다. 요즘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주례를 하지 않는다. 주례사와 치마 길이는 짧아야 한다고 하니 70 넘은 늙은이 잔소리로 들릴까봐 겁이 나기도 한다.
나의 주례사는 통상적인 내용인 즉,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운운…은 없다. 내용을 열거하면 “주례사를 맡은 제가 성혼선언문을 낭독하였고 서명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 순간부터 신랑신부는 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해지는 권리인 채권자가 되는 것이고, 주례인 저는 채무자가 되어 무한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영국의 경우 신랑신부가 5년 안에 헤어지면 1차적 책임은 주례가 지게 되어 있고, 하객은 주례의 연대 보증인이 되어 같이 질책을 받습니다. 이렇듯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은 은행에 돈 빌릴 때 채무자의 연대보증을 서는 것과 똑같이 신랑신부가 행복해지도록 저와 같이 노력해야 합니다. 저도 열심히 채무자의 역할을 할 테니까 하객 여러분들도 연대 보증인으로 한 쌍의 부부가 우리 사회일원으로 튼튼한 뿌리를 내리도록 도와주셔야 합니다.”라고 다짐을 받는다.
이후 주례사 내용은 이렇다.
“오늘 이 시간 이후 신랑의 오른쪽 발과 신부의 왼쪽 발은 오로지 하느님만이 풀 수 있는 쇠사슬로 꽁꽁 묶어 놓았습니다. 즉, 두 사람은 네발이 아니고 세발로 걸어야 하는 매우 불편한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신랑신부는 각자 따로 생각하고, 따로 행동하였고, 먹는 것도 신랑은 한식당으로, 신부는 중식당으로 가곤 했습니다. 이제는 오로지 같이 판단하고 무엇이든지 같이 행동해야 합니다. 두 사람의 공동체입니다. 아라비아 속담에 ‘빨리 혼자 가는 사막길에 살아남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천천히 가더라도 두 사람이 가는 길은 반드시 살아남는다.’, 또 우리 속담의 ‘토끼와 거북이’도 상상해 보세요. 두 사람이 함께 운행하는 자동차의 첫 출발은 1단 기어를 넣고 서서히 달리지만 속도가 붙어 2단에서 3단으로 다시 톱기어를 넣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는 무한질주가 되듯이, 부부는 양보하고 타협하고 서로 존중하고 격려하면 이것이 부부행진의 톱기어가 되고 이때 자녀가 생기면 그야말로 무한 질주가 되는 것입니다. 결혼이란 무조건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신랑신부의 2인 3각 구조가 처음에는 서로 다투기도 하고, 한없이 불편한 것 같지만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살다보면 훨씬 안전하고 더 많은 이익이 창출되는 것을 알게 되고 또 주위의 어른들 즉, 새로 생긴 처갓집 부모님과 그 가족들을 나의 친부모 이상으로 모시는 것도 톱기어로 전환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입니다. 신랑신부가 행복해지고 우리 사회의 중추적 인물이 되는 것에는 고매한 이론보다는 서로가 양보하고 존경하는 미덕에서 그리고 실천적 행동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부디 2인 3각 구도의 행진이 곧 하느님이 짝지어준 부부의 삶임을 명심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과 같이 나의 주례사를 회고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