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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추억의 야화(野話) 제 11편
새마을이
2018. 1. 19. 16:01
글쓴이 : 이병화
(1974년 8월 15일 아침)
그날 아침 9시 50분경 집사람이 “여보 큰일 났어요. 각하 내외분 전용 커피잔이 부엌 바닥에 떨어져 조각이 나버렸어요”라며 불안해했다. 부엌에 쥐가 들어올리도 없고 찬장 속에 얌전히 올려놓은 그릇이 찬장문이 열려도 떨어질 수가 없는데 지진이 난 것도 아니고…… “걱정말아요 일단 청와대에 알려는 드려야지요”라며 동탄 102번 경비전화를 호출하여 영부인 부속실장인 李參芝(이삼지)여사에게 “커피잔 세트가 떨어져 박살이 났어요”라고 신고했더니 침통한 말투로 “까짓 커피잔인데 어때요, 괜찮아요”라며 안심시켜 주었다. 이듬해 국립묘지 육영수 여사 추모식장에서 만난 이삼지 여사께서는 “사실은 그날 아침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거행되는 8.15 광복절 기념식장에 가시는 영부인을 배웅한 후 서재 겸 집무실에 와보니 어린이들과 같이 찍은 영부인의 사진이 벽에 못이 빠져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불길한 마음에 휩싸여 있는데 이선생 전화를 받고 영부인 신변에 큰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부속실 직원들을 불러모아 주의주고 있었다고 했다. 그날 10시 23분 문세광의 흉탄을 맞고 7시간 후인 오후 5시 반 경에 육영수 여사께서는 운명하셨다.
집사람은 청와대에서 보내온 행남도자기 회사의 본차이나 커피잔 세트에는 깊은 인연이 있어 매우 애지중지했다. 72년 5월 초 새마을 1호 주택이 완공될 때 대통령께서 외관만 둘러보신 후에 집사람이 이곳으로 이삿짐을 옮겼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오셨다. 예정에도 없는 평일 날 행차라서 나는 청와대 업무차 올라가버렸고 부엌문을 열고 들이닥치신 대통령을 보고 기겁을 한 집사람에게 걱정하지 말라면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고 한다. 악수한 손을 놓지 않고 집사람의 손등과 손바닥을 유심히 살핀 후 농부의 아내 손임을 확인하고, 웃으면서 ”임자 나 커피 한 잔 타 주시지“라고 주문하여, 집사람은 문제의 그 커피잔에 커피를 타서 올렸는데 대통령께서 직접 지시를 했기 때문에 경호관의 검수없이 올렸다고 한다. 당일 검수담당 경호관의 전하는 말은 커피를 마실 때 약간 찡그린 인상을 가졌으나 잘 마셨다는 표현을 분명히 하셨다고 했다. 그러나 집사람은 대통령께서 커피를 가져오라는 말씀에 혼이 빠져 설탕 넣는 것을 잊어버리고 블랙커피를 올렸는데 훗날 동행했던 경향신문 기자는 설탕 대신 소금을 넣었다고 가십란에 기사화했다. 그날 각하께서는 안방까지 둘러보시고 ”책장과 숟가락 뿐이더라“고 박진환 새마을 특보에게 전했다고 했다. 이삿짐과 같이 가져온 90cc 일본 혼다 오토바이를 보고 누구 것이냐고 경호관에게 물어 이병화 농장장이 가져온 것이라고 했더니 위험할 것이라는 말이 전해져 며칠 후 김보현 농림장관이 삼천리 자전거 한 대를 보내주었다. 훗날 하병호 경호과장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녀석이 오토바이 타고 청와대에 올 것 같아서 염려되어 물어봤다는 것이었다.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신 다음 해 초여름 청와대 시범농장 길 건너 317번 지방도로 좌측에 있는 농민학교 진입로 좌우로 심어놓은 오동나무 12그루가 꽃도 피지 않고 시름시름 하더니 결국은 전부 죽어버렸다. 오동나무는 육영수 여사가 흰 목련꽃 다음으로 오동나무 꽃을 좋아하신다고 하여 한국 최고의 오동나무 전문가인 화성군 김병만 새마을지도자에게 구입하여 72년 봄에 심은 것이었는데 초여름이면 꽃이 만개하여 구경거리였으나 박진환 특보께서 죽어가는 오동나무를 보고는 오동나무 꽃 보실 분이 돌아가셔서 오동나무도 따라 죽는 것 아니겠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산림청 육종 연구소에서 수은은사시나무 개발한 현신규 박사를 모시고 와서 오동나무가 왜 죽어가는지 살펴달라면서 농민학교생들과 힘들게 몇 그루 뽑아서 뿌리를 보여 드렸는데 원인을 규명치 못했다. 현신규 박사에게 이때 속성수 은사시나무를 개발한 공로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현사시나무“라고 이름지어 주셨다.
백과사전에도 수원은사시나무는 「현사시나무」라고 표기된 유래가 상세히 나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