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에 대비한 준비와 북한 문제

“두만강에 남ㆍ북ㆍ중ㆍ러의 「다국적 도시」 만들자” 기사를 읽고

새마을이 2014. 12. 29. 11:57

 

두만강에 남ㆍ북ㆍ중ㆍ러의 「다국적 도시」 만들자기사를 읽고

 

제가 50년동안 조선일보를 애독하면서 이번(12 26,29 1면기사)만큼 실망을 금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어쩌다가 조선일보가 현실성 제로에 가까운 이 프로젝트를 기사화하였는지 의문이 떠나질 않습니다. 제가 항의성 글을 보내겠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보복 당할 수도 있어서 삼가 하라고 하였으나 자칭 전문가의 입장에서 그냥 볼 수가 없어 몇 자 적어 보냅니다.

 

저는 ()국제농업개발원 연구소장 이병화(70)입니다. 기사와 관련되는 저의 경력을 몇 가지 열거하고 지적하겠습니다.

. 저는 한국출신으로 가장 많이 방천(防川)과 핫산, 그리고 북한 두만강구역()을 드나든 사람입니다. DJ정부때는 연해주 생산곡물을 싣고 20여차례 두만강구역에서 러시아 광괘화차를 표준괘도로 교환한 경험이 있고,

. UNDP 기획 볼쇼이 블라디보스톡 프로젝트1(1992 3), 2(11)때 러시아측 추천으로 간여한 바 있고,

. 웅상항과 굴포리 일원에 지미-카터 미국대통령의 헤비타트집짓기 북한지역 책임자인 진- 사업에 관여했고,

. EU공동체 상공회의소장 안토니오-네글리 박사가 2000년도에 추진한 핫산-방천-나선 연계 개발프로젝트 계획서를 우리 말로 옮겨 김정일에게 전달한 바 있고,

. 신의주특구 양빈사건때 남ㆍ북한 및 중국에서 이광요 싱가폴 선임장관을 특구장으로 모시자는 의견에 따라 제가 서신을 직접 전하고 거부의사 서신을 받아 한국정부에 전달(20021115)한 바 있고,

. 1935(일제식민지), 등소평, 후진타오 집권때 등 3차례 중국 중앙정부는 환동해출해권 확보를 위해 방천에서 굴포리쪽으로 운하개설을 계획했던 내용을 일본 오사카 경법대학에 전달한 바 있고,

. 러시아 고르바쵸프와 엘친 시절인 1990~97년 사이에 러시아대통령 극동러시아 농업경제 자문관을 지내면서, ‘중국은 동해출해권 확보에 결사적이지만 러시아측은 이것을 결사적으로 막아야 된다고 주장하는 극비 내용을 확보하여 한국 정보당국에 전달한 바 있고,

. 1999 9월 제가 쓴 학위논문 러시아 자원과 북한의 노동력, 한국의 자본과 기술이 결합한 삼위일체 공생농업개발이 러시아 국가정책으로 채택된 바 있고,

. 노무현 정부 때는 선봉항 인근에 있는 승리 정유공장 재가동 및 업그레이드 계획 때 고려인 기업가 팀과 한국측과 합작결속을 해준 경험이 있고,

. 저는 연해주 프로모리스키 농업아카데미와 하바로브스크 기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각각 받은 바 있어 극동러시아 관료들과 인맥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현실성 결여에 대한 저의 의견을 피력하겠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측에 26일 기사에 관하여 문의 결과 희망사항을 현실처럼 표현하면 매우 난처해질 수 있다는 것과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측은 이것과 직접 관련 인터뷰한 적이 없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나선 지역 개발총책이었던 김달현과 장성택도 중국측이 제의한 두만강구역 강변에서 굴포리 직선 15km까지 파나마운하처럼 준설하고 핫산에서 오는 철길은 영도다리처럼 드는 것이 아니고 압록강철교처럼 시계바늘 회전식으로 하는 계획과 운하좌우에 인구 10만유치와 일자리 제공 등을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보고했으나 러시아의 방해로 결국 중국은 훈춘경제특구, 북한은 나진항 개방으로 지금과 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의 이러한 보도는 칼날을 쥐고 있던 김정은에게 칼자루로 바꾸어 주는 결과가 되어 더욱 기고만장하여 김정은이 간덩이만 키워준다는 러시아측 정보담당자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비상시에 굴포리 12km 직선도로는 AN-2복엽기 활주로이고, 웅상항은 상어급, 유고급 잠수정 항구로써 러시아 극동해군 볼쇼이칼멘 잠수함기지와 상당기간 연계 결속되어 있어 주변개발은 사실상 절대 불가합니다.

● 3 100만평씩 300만평 다국적도시 건설은 관여국 법령을 모두 고쳐야 하는데 군사 항목이 많아 설상 합의가 되어도 시간상 5년 이상 걸리고, 이때쯤 북한 김정은 정권의 존재여부가 불투명한데, 한국정부에 경제적으로 결코 도움이 되기 어려운 이런 사업을 추진하자는 목적의 배후에 독자들이 모르는 무엇이 있다면 관여할 바 아닙니다.

북한이 15년전 지금은 러시아령이 된 상(윗쪽)녹둔도 반환소송을 한 경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중국의 사주로 시작되었으나 이순신 장군께서 녹둔도 근무당시는 두만강이 지금보다 윗쪽으로 흘렀음)

이상과 같이 열거하였습니다. 제 견해에 이견이 있으시면 조선일보 및 국가건축위원회와 공개토론을 제의합니다.

 

조선일보를 충심으로 사랑하는 애독자 이병화 올림

(010-5227-4845, go123up@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