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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과 새마을의 노래가락/한민족 정체성이 숨겨져 있는것 같다.

새마을이 2020. 2. 3. 06:09

●아리랑과 새마을 노래 음율속에 한민족 정체성 있는것 같다●

 

◇아리랑 노래.

----1989년9월 중앙시베리아 지역에 속해있는 바로나울 인근에 있는 일명 백색도시 비스크(핵 전략무기 연구소)의 초대형 유리온실 안에서 고르비대통령을 만났고, 그는 나에게 여기서 멀잖은 곳에 당신의 한민족과 유사한 알타이 종족이 곧 자치정부를 성립한다는 말을 하면서 나더러 "극동러시아농업경제 자문위원"을 맞아달라는 부탁 했고 나는 쾌히 승락했다.

이듬해 연해주농업아커데미총장을 만났고 나는 그의 제자가 되었다.

안기부는 자신들의 허가없이 고르비 만났다고 나를 못살게 굴었다.상을 주어도 모자랄 판에...

불과 30년전인데,꼭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같게 느껴진다.

역사공부하는 안기부직원이 '당신이 다녀온 바로나울 남방300키로 지역에 고르노 알타이주(州)가 있는데 우리와 꼭같은 모습에 녹용소득이 주정부소득의 절반이된다'는 말을 하였다.

3년후 고르노알타이주가 러시아연방 자치공화국이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그린하우스1헥터를 지어주면 돈대신 元鹿茸(알타이 산맥의 최고품질 녹용)을 주겠다고 하여 한국의 업자들을 뫼시고 수차례다녀왔다.

녹용수출과 그린하우스 건설 담당은 경제담당 알렉세이부통령 소관이었고 부통령 집무실은 제법 웅장했다.

우리 일행의 숙소는 대통령궁 앞에 있는 호텔겸 대형식당이였는데,그날 우리일행을 위한 공연에 궁중음악 같은것이 연주되었는데 "이리요,쓰리요,아리아리요,어라 으라"등의 용어가 흘러나오는 음율에 충격을 받았다.

그들의 용어속에 삼촌은 삼춘이고, 사촌은 사춘으로, 입는옷은 옷시, 솟대는 발음이같고, 먹는 밥을 바브라고 했다.훗날 서경대학의 서길수교수님에 따르면 우리말과 같은 용어가 상당히 많다는 조언해주었다.

1995년경에 바이칼 호수가 있는 몽골족이 세운 브리야트자치정부의 셔먼들의 노래속에서 "아리 쓰리 어리 써리 아라 얼라 "소리를 또들었다.

1998년 캄차카 북쪽 코략자치구역(郡)의 행정소재지 팔라나에서 또 꼭같은 "아리 아리쓰리 아리요 "응율을 들었다

나는 음악과 소리에는 무식하여 아는것이 없어나 우리민족이 북방민족인 알타이족과 서로관계되는 혈통이 연결된것 같아서 지금도 서적들을 찾아 더듬고 있다.

 

◇ 새마을노래

----구소련이 무너지고 중앙 아시아국가들이 각자 독립을 하고 새로운 정책개발이 한참인 1993년 여름 우즈벡키스탄 정부초청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우주벡키는 1937년 연해주고려인들이 가장많이 강제이주당한 지역이고,특히 그곳에는 나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 구소련정부로 부터 노력영웅 훈장을 2개나 받은 초능력의 영웅이 개척한 <김병화농장>있다는 사실은수차례 언론보도를 통하여 알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김병화선생의 이력을 먼저 논한다.

그는 1912년생으로 함북도 출신 김치만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머리가 영재급이라서 15살에 생활종합대학(산업대학)에 입학후 1931년 모스코바군사정치학교 필하고 위관급 정치장교로 발령받고 태어난 연해주에로 부임했다.

1937년 중앙아시아 강제이주때 처와 아들을 먼저 보내고 2년후 예편과 동시 우즈벡키에서 북극성.햊불등 콜호즈등 여러농장을 조직후 자신의 이름을 따서 김병화농장으로 맘모스화시켰다.

전체 소련에서 가장 소득높은 농장으로 콜호즈(협동농장)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날 나는 고려인회장의 안내로 "김병화농장에 이병화가 간다"라는 농담을 하고 농장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기절할뻔했다.이유는 마이크에 새마을노래와 꼭같은 음율이 흘려나왔기 때문이었다.

이 노래 언제부터 불렀는가의 질문에 그는 1940년중반 제2차대전 전후 같다고말했다.

박정희대통령께서 작사 작곡한 우리가 부른 새마을 노래와 60%는 가락이 같았다.

경쾌한 음율에 발맞춰 농장가는 우리 교려인 동포들이 머리에 영화필림과 같이 영상화되었다.

노래가사도 우리와 유사했다.발걸음도 가볍다. 아침샛별본다.절미운동하여 이웃도와 품앗이 하다등, 참으로 기막힌 현상 이었다.

귀국하여 아무리 짜 맞춰도 박정희대통령은1917 생이고 김병화선생과는 절대적으로 연결되는 고리가 없었다 그런데,왜?음율이 유사하고 가사조차 유사할까?

나의 우둔한 머리가 내린결론은 민족 정체성에서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