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가혁명당 허경영총재를 좋아한다●
이유를 크게 분류하면,
첫째는, 국회의원 100명으로 줄여 무보수 명예적으로 하고, 전교조.민노총 해산 시킨다.
둘째는, 문재인대통령이 추진한 모든 정책을 꺼꾸로하면 나라가 산다.
셋째는, 광주5.18유공자 명단을 밝혀 진실구명하겠다.
얼마나 좋은 정책 인가?
사실 세상사람들중 <허경영> 모르는 사람은 없다.
대체로 개그맨 같다 혹은 무속인 아닌가등 사람마다 판단이 각양각색임은 분명하다.
나와 허경영은 50년 지기이다.
그의 두뇌는 분명 천재다. IQ430인가는 차치 하드라도...
오직 하면 도올 김용옥과 누가 똑똑한가를 교육방송에서 한판 난전을 벌려보려고 공작을 했는데 김교수측은 답변이 없고 허총재는 덩달아 유명해진다고 쌍수들고 환영했다.
박정희대통령.이병철회장과 허경영의 인연을 나는 상당부분 알고 있다.
세월을 50년 전으로 돌려보자.
건국이후 1972년도는 그야말로 격동의시대였다.
7.4 남북공동성명. 8.3 고리채 사채동결.10월 유신. 12월27일 제4공화국탄생등...
때는 1972년 추석을 앞둔 십여일전,삼성그룹 이회장님은 곤궁에 처해 있었다. 청와대에서 고리채동결하고 새로운 헌법만들고 남 북한 통일대비 돈 필요하다고 정치헌금을 요구한 것이였다.
삼성의 회장님은 수원 원천저수지밑의 넓은 농지에 삼성전기( 지금은 전자)에 모든자금 투입하여 총력사업으로 밀어 부칠때라서 표현에 위하면 ' 아들에게 준 용돈도 빼앗고 싶었다'라는 말씀도 했다한다
그날 허경영은 이회장님 친구인 최사장의 안내로 이회장님 접견실 바깥 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응접실 안에서 두렁두렁 한탄하는 회장님의 목소리를 엿듣고 접견때 청와대에서 요구하는 금액의 절반만 가방에 넣어주시면 제가 완벽히 처리하겠다고 하도 큰소리를 쳐서 이회장님 전용차에 우리 양아들 편에 부탁하신 그것 보냈다고 경호실장한테 전화하는것 확인후에 2시경 청와대에 도착하니 박실장이 가져온 가방달라고하니 죽어도 안된다면서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고 대통령과 면담이 이루어 졌다고한다.
집무실 들어가자 말자 허경영은 벌러당 엎어져 큰절을 올리면서 " 각하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 양부로 부터 받은 가방의 돈을 절반을 쪼개서 경리부에 주고 왔습니다.
주는돈 다가져오면 삼성부도 납니다.
이것은 아버님이신 이회장님도 모릅니다.
그러나 추석 지난후에 꼭 보충하겠습니다.
굽히 살펴주십시요" 라며 메달렸다고한다.
그때 박대통령께서는 바로 이회장님께 전화하여 보내준 성금잘받았습니다 라고 통화하면서 ' 좋은 양아들 두었습니다' 라고 칭찬한후 다음에 기회있을때 자내 자문이 필요할것 같다면서 만년필 한자루 선물받고 무려 나왔다고 한다.
훗날 소문에 따르면 그날 박정희대통령께서는 허경영이가 거짓말 한것 알고 있다고 했다.
이날 나는 국내산 아오리사과를 산지에서 구입하여 검식후에 시식용으로 올리려고 주방에서 대기중이었고 이러한 내용들 일부 목격했다.
허경영은 삼성본관에 돌아가니 난리가 났드라고 했다.
너가 삼성을 살렸다 라며 칭찬받고 이후 이병철회장님의 총애가 있었다고 전한다
이유를 크게 분류하면,
첫째는, 국회의원 100명으로 줄여 무보수 명예적으로 하고, 전교조.민노총 해산 시킨다.
둘째는, 문재인대통령이 추진한 모든 정책을 꺼꾸로하면 나라가 산다.
셋째는, 광주5.18유공자 명단을 밝혀 진실구명하겠다.
얼마나 좋은 정책 인가?
사실 세상사람들중 <허경영> 모르는 사람은 없다.
대체로 개그맨 같다 혹은 무속인 아닌가등 사람마다 판단이 각양각색임은 분명하다.
나와 허경영은 50년 지기이다.
그의 두뇌는 분명 천재다. IQ430인가는 차치 하드라도...
오직 하면 도올 김용옥과 누가 똑똑한가를 교육방송에서 한판 난전을 벌려보려고 공작을 했는데 김교수측은 답변이 없고 허총재는 덩달아 유명해진다고 쌍수들고 환영했다.
박정희대통령.이병철회장과 허경영의 인연을 나는 상당부분 알고 있다.
세월을 50년 전으로 돌려보자.
건국이후 1972년도는 그야말로 격동의시대였다.
7.4 남북공동성명. 8.3 고리채 사채동결.10월 유신. 12월27일 제4공화국탄생등...
때는 1972년 추석을 앞둔 십여일전,삼성그룹 이회장님은 곤궁에 처해 있었다. 청와대에서 고리채동결하고 새로운 헌법만들고 남 북한 통일대비 돈 필요하다고 정치헌금을 요구한 것이였다.
삼성의 회장님은 수원 원천저수지밑의 넓은 농지에 삼성전기( 지금은 전자)에 모든자금 투입하여 총력사업으로 밀어 부칠때라서 표현에 위하면 ' 아들에게 준 용돈도 빼앗고 싶었다'라는 말씀도 했다한다
그날 허경영은 이회장님 친구인 최사장의 안내로 이회장님 접견실 바깥 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응접실 안에서 두렁두렁 한탄하는 회장님의 목소리를 엿듣고 접견때 청와대에서 요구하는 금액의 절반만 가방에 넣어주시면 제가 완벽히 처리하겠다고 하도 큰소리를 쳐서 이회장님 전용차에 우리 양아들 편에 부탁하신 그것 보냈다고 경호실장한테 전화하는것 확인후에 2시경 청와대에 도착하니 박실장이 가져온 가방달라고하니 죽어도 안된다면서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고 대통령과 면담이 이루어 졌다고한다.
집무실 들어가자 말자 허경영은 벌러당 엎어져 큰절을 올리면서 " 각하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 양부로 부터 받은 가방의 돈을 절반을 쪼개서 경리부에 주고 왔습니다.
주는돈 다가져오면 삼성부도 납니다.
이것은 아버님이신 이회장님도 모릅니다.
그러나 추석 지난후에 꼭 보충하겠습니다.
굽히 살펴주십시요" 라며 메달렸다고한다.
그때 박대통령께서는 바로 이회장님께 전화하여 보내준 성금잘받았습니다 라고 통화하면서 ' 좋은 양아들 두었습니다' 라고 칭찬한후 다음에 기회있을때 자내 자문이 필요할것 같다면서 만년필 한자루 선물받고 무려 나왔다고 한다.
훗날 소문에 따르면 그날 박정희대통령께서는 허경영이가 거짓말 한것 알고 있다고 했다.
이날 나는 국내산 아오리사과를 산지에서 구입하여 검식후에 시식용으로 올리려고 주방에서 대기중이었고 이러한 내용들 일부 목격했다.
허경영은 삼성본관에 돌아가니 난리가 났드라고 했다.
너가 삼성을 살렸다 라며 칭찬받고 이후 이병철회장님의 총애가 있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