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서●
존경하는 윤석열대통령님과 국유재산관리부처 장관님,
그리고 산림청장님께 제안올립니다.
------제안내용-----
박정희 대통령께서 1971년 10월초 첫 벼베기 행사 참석차 고속도로 달리던 중 서울깃점 하행선 37.5키로 지점 오른쪽에 엄청난 면적의 농지 훼손현장을 목도하시고 누가 언제 이런 범죄 저질렀나 조사를 동행한 농림차관에게 지시했고,
행사 끝난후 올라오시면서 현장을 직접 둘려 보셨고, 농지 소유주는 산림청이고 관리는 산림육종연구소(현 산림생명자원 연구소)였는데
농지훼손은 현대건설 정주영회장이 임자없는 농지라고 고속도로 공사장에 퍼가고 크고 깊은 웅덩이 수십개 만든 것으로 판명났습니다.
다음날 정주영회장과 육종연구소 최○○소장은 청와대에 호출받아 원상복구키로 하고 처벌은 면한 것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며칠후,완벽하게 정리된 현장에서 관계 기관장 들에게
"추풍령 이북지역에 겨울철 농한기 소득증대 사업 개발키 위하여 이곳에 첨단 비닐하우스 만들고 내가 직접 농시지어 소득분석 해보겠소.
박진환 경제2특보(새마을담당특보)는 책임지고 추진하시요".
이후 이곳에 철제 비닐하우스100평짜리 12개를 건설했고 스프링쿨러등 첨단 시설 첨가 했습니다 .
또 신설농장 한쪽에 개인땅 472평에 묘지가 2기도 있어 이땅 매입후 타곳으로 이전하고 농지매입 비용은 대통령께서 개인돈을 부담하고 농지는 산림청에 기부했습니다.
제안자는 이미 10월 중순에 선발되어 책임자로 현장근무 중이 었습니다.
얼마후에 대통령께서는 내가 이곳에 와서 농사 직접짓고 머물면서 새마을지도자와 리장단들 만날 회의장소 필요하니 여기 설계되로 건물 지어 주시요 라며 내민 설계도와 자금 받아 72년도 3월 입주식때 관련 기관장및 산림청장과 육종연구소장등과 인근주민 50여명 초빙되어 민속촌 막거리로 파티 했습니다 주민들에게는 동립산업에서 제공한 밀가루 한포대씩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날 대통령께서는 본채37평.창고18평.경호동23평등 3동의 건물 소개하면서 제안자의 아내에게 살면서 불편한 점을 적어서 그때마다 알려주면 개조토록 합시다. 이집이 내 생애에 처음으로 지어본 첫 건물이요.
주택 이름은 [새마을1호주택]이라고 불러주시요.
이후 이곳은 백색혁명의 산실이 되어 농촌소득증대 요람으로 자리 뫼김했고 많은 해외 귀빈들이 방문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이후 14차례 집사람의 건의에 따라 부분 개조했고 50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이 그대로 보수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후에 1호주택이 모델되어 전국에 2호. 3호.4호까지 집단 건설되었습니다.
지금 이곳 주택에는 당시 대통령께서 사용하시던 농기구와 집무실의 응접용 가구및 서고와 다수의 물품등이 보존 유지 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1972년부터 79년까지는 대통령께서 직접 임대로 지불했고, 1980년부터2018년중순까지는 제가 지불했습니다.
무려 46연간 물가 지수로 따지면 임대농지를 3번이나 구입할 비용 지불했습니다
2018년말 점유 사용 허가 취소되어 매일 25만8천원씩 벌금을 물어야 할 처지임과 아울러 문재인정부는 철저히 박정희 새마을운동 흔적 없에기 일환으로 저를 적패청산 제1호 인물과 새마을 1호주택 역시 적패청산 대상으로 몰아 정권이 바뀐 지금도 철거 소송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저는 문재인 정부에 문의 했습니다
만약 이곳에 김대중.노무현 두분 대통령께서 새마을 소득증대을 의한 운동했다면 어떠했겠가 의 질문에 그들은 세계적 명소 만들었겠지요,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들의 답변처럼 제안자는 이곳농장과 새마을1호주택을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값어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유지하고 싶습니다.
대통령님께서 딱 한번만 방문하셔서 현장 보시면 바로 산업화정책의 밑바탕인 새마을 운동 산실이 바로 이곳이구나 라고 감탄하실 것입니다.
저는 최근 훌륭한 독지가 만나 그동안 도로확장으로 줄어던 농장 면적 3천평을 인수하여 국제규격 문화
재로 만들고 대신 임야 100만평과 교환하는 심의 끝냈습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부디 제안자의 의견을 검토하셔서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선조들이 행한 새마을 운동의 흔적을 체험토록 하여 주십사 두손 모아 빌고 또 빕니다.
구체적 내요은 첨부 자료에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존경하는 윤석열대통령님과 국유재산관리부처 장관님,
그리고 산림청장님께 제안올립니다.
------제안내용-----
박정희 대통령께서 1971년 10월초 첫 벼베기 행사 참석차 고속도로 달리던 중 서울깃점 하행선 37.5키로 지점 오른쪽에 엄청난 면적의 농지 훼손현장을 목도하시고 누가 언제 이런 범죄 저질렀나 조사를 동행한 농림차관에게 지시했고,
행사 끝난후 올라오시면서 현장을 직접 둘려 보셨고, 농지 소유주는 산림청이고 관리는 산림육종연구소(현 산림생명자원 연구소)였는데
농지훼손은 현대건설 정주영회장이 임자없는 농지라고 고속도로 공사장에 퍼가고 크고 깊은 웅덩이 수십개 만든 것으로 판명났습니다.
다음날 정주영회장과 육종연구소 최○○소장은 청와대에 호출받아 원상복구키로 하고 처벌은 면한 것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며칠후,완벽하게 정리된 현장에서 관계 기관장 들에게
"추풍령 이북지역에 겨울철 농한기 소득증대 사업 개발키 위하여 이곳에 첨단 비닐하우스 만들고 내가 직접 농시지어 소득분석 해보겠소.
박진환 경제2특보(새마을담당특보)는 책임지고 추진하시요".
이후 이곳에 철제 비닐하우스100평짜리 12개를 건설했고 스프링쿨러등 첨단 시설 첨가 했습니다 .
또 신설농장 한쪽에 개인땅 472평에 묘지가 2기도 있어 이땅 매입후 타곳으로 이전하고 농지매입 비용은 대통령께서 개인돈을 부담하고 농지는 산림청에 기부했습니다.
제안자는 이미 10월 중순에 선발되어 책임자로 현장근무 중이 었습니다.
얼마후에 대통령께서는 내가 이곳에 와서 농사 직접짓고 머물면서 새마을지도자와 리장단들 만날 회의장소 필요하니 여기 설계되로 건물 지어 주시요 라며 내민 설계도와 자금 받아 72년도 3월 입주식때 관련 기관장및 산림청장과 육종연구소장등과 인근주민 50여명 초빙되어 민속촌 막거리로 파티 했습니다 주민들에게는 동립산업에서 제공한 밀가루 한포대씩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날 대통령께서는 본채37평.창고18평.경호동23평등 3동의 건물 소개하면서 제안자의 아내에게 살면서 불편한 점을 적어서 그때마다 알려주면 개조토록 합시다. 이집이 내 생애에 처음으로 지어본 첫 건물이요.
주택 이름은 [새마을1호주택]이라고 불러주시요.
이후 이곳은 백색혁명의 산실이 되어 농촌소득증대 요람으로 자리 뫼김했고 많은 해외 귀빈들이 방문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이후 14차례 집사람의 건의에 따라 부분 개조했고 50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이 그대로 보수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후에 1호주택이 모델되어 전국에 2호. 3호.4호까지 집단 건설되었습니다.
지금 이곳 주택에는 당시 대통령께서 사용하시던 농기구와 집무실의 응접용 가구및 서고와 다수의 물품등이 보존 유지 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1972년부터 79년까지는 대통령께서 직접 임대로 지불했고, 1980년부터2018년중순까지는 제가 지불했습니다.
무려 46연간 물가 지수로 따지면 임대농지를 3번이나 구입할 비용 지불했습니다
2018년말 점유 사용 허가 취소되어 매일 25만8천원씩 벌금을 물어야 할 처지임과 아울러 문재인정부는 철저히 박정희 새마을운동 흔적 없에기 일환으로 저를 적패청산 제1호 인물과 새마을 1호주택 역시 적패청산 대상으로 몰아 정권이 바뀐 지금도 철거 소송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저는 문재인 정부에 문의 했습니다
만약 이곳에 김대중.노무현 두분 대통령께서 새마을 소득증대을 의한 운동했다면 어떠했겠가 의 질문에 그들은 세계적 명소 만들었겠지요,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들의 답변처럼 제안자는 이곳농장과 새마을1호주택을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값어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유지하고 싶습니다.
대통령님께서 딱 한번만 방문하셔서 현장 보시면 바로 산업화정책의 밑바탕인 새마을 운동 산실이 바로 이곳이구나 라고 감탄하실 것입니다.
저는 최근 훌륭한 독지가 만나 그동안 도로확장으로 줄어던 농장 면적 3천평을 인수하여 국제규격 문화
재로 만들고 대신 임야 100만평과 교환하는 심의 끝냈습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부디 제안자의 의견을 검토하셔서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선조들이 행한 새마을 운동의 흔적을 체험토록 하여 주십사 두손 모아 빌고 또 빕니다.
구체적 내요은 첨부 자료에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